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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없다.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을 쌓았다. 고교 1학년 시절 인근 고등학교 야구부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지만 기존 선수들의 훈련량을 따라가기 힘들 거라며 거절당했다. 스물한 살에 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독립리그 팀인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게 된다. 파주 챌린저스 소속으로 상대했던 SK 2.5군 선수들과의 연습 경기에서 찍은 최고 구속이 144km. 이후 몇몇 프로팀으로부터 입단 문의를 받았지만 비선수 출신이란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이후 일본 독립리그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 뛰었고, 투수 코치인 김무영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2018년 8월 20일, 한선태는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진행된 2019 신인 드래프트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KBO 이사회의 규약 개정으로 비선수 출신도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웃에서 그가 보인 최고 구속은 145km. 팀에 소속돼 야구를 한 기간이 2년여에 불과한 터라 그의 등장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월 10일, 2019 KBO 신인드래프트 현장. 한선태는 10라운드 95번째 순위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았다. KBO 역사상 최초의 비(非) 선수 출신이 탄생한 순간이다.(사진=LG 제공)>
“지금요? 집에 있다가 이천으로 짐 챙기러 가고 있어요.”
24일 오전, 한선태(25·LG 트윈스)의 목소리는 살짝 고조돼 있었다. 전날 LG 구단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1군으로 콜업된다는 걸 알았다는 그는 이후 2시간30분 동안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고 말한다. 한선태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자꾸 웃음이 새어나오지만 어렵게 기회를 받은 만큼 그 기회를 잘 살려내고 싶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2019 신인드래프트에서 10라운드 전체 95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은 한선태는 KBO리그 최초의 비선수 출신이다. 그동안 육성 선수 신분이었던 그가 정식 선수로 계약을 맺게 되는 배경에는 퓨처스리그에서의 활약 때문. 24일 현재 한선태는 퓨처스리그 19경기에서 25이닝을 소화하며 1패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0.36을 기록했다. 2군에서의 빼어난 성적으로 인해 류중일 감독과 최일언 코치는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한선태에게 ‘1군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육성 선수가 1군 투수 코치의 지도를 직접 받는 일도 생경했지만 그만큼 LG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한선태에게 남다른 기대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선태에게 잠실에서 보낸 4일이란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재미있었어요.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가 정말 크더라고요. 야구 기초가 부족하다보니 변화구 구사력이 떨어지는데 최일언 코치님께서 포크볼을 직접 가르쳐주시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잘 챙겨주셨어요. 첫 째 날에는 경기 시작할 때 불펜 포수들과 더그아웃 옆에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둘째 날부터 (차)우찬 형이 자기 옆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불펜 포수들이 앉는 곳 바로 옆 칸인데 온도 차가 매우 컸습니다. 더그아웃이라 그런지 생동감이 느껴졌어요.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통해 자꾸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만약 저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면 어떻게 던졌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경기 내내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이천으로 돌아갔어요.”
한선태는 차우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지난 겨울 잠실에서 운동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인사하고 나서 이번에 다시 만났는데 차우찬이 한선태를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챙겼다고 한다.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우찬이 형 덕분에 1군에서 별다른 불편함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어요.”
동기부여가 되었던 ‘1군 동행’을 마무리 짓고 이천으로 돌아간 한선태는 2군 경기에서 배운 걸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치님들에게 미리 말씀드렸어요. 경기 중 좋은 타이밍에 포크볼을 던지겠다고요. 이후 코치님들은 물론 포수들, 선배님들, 전력분석 담당자까지 모두 제 포크볼을 지켜보고, 분석하고 조언해주셨어요. 시합 때 경험을 쌓고 싶었고, 그런 기회가 주어져 삼성전, 상무 경기 때 4이닝동안 포크볼을 던졌습니다. 공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있지만 잘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자신 있게 바닥을 향해 던져도 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포수들도 원 바운드돼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던지라고, 모두 막아줄 테니 자신 있게 던지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 안에는 들어갔어요. 포크볼은 떨어지는 각도가 중요해서 어느 정도 떨어지는지도 매번 체크했습니다.”
<사진 위,
파주 챌린저스 시절의 한선태. 사진 아래,
일본 독립리그인 도치기 골든브레이브스에서의 모습.(사진=한선태 제공)>
한선태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포크볼에 서서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포크볼이 직구와 팔 스로잉이 똑같기 때문에 다른 변화구를 던질 때보다 편하더라고요. 그동안 확실한 결정구를 갖고 싶었는데 최일언 코치님 덕분에 비로소 결정구를 찾게 된 것이죠.”
한선태는 등판 이후에 굉장히 바쁜 모습을 보인다. 가득염 투수코치를 비롯해 4명의 코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투구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를 묻고 다니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질문하면서 배워야죠.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게 더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LG 와서 놀란 게 코치님들이 정말 잘 가르쳐주세요. 제가 너무 자주 찾아가서 귀찮으실 수도 있을 텐데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주시고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저는 야구하고 처음으로 데이터를 받아봤어요. 투구하면 트랙맨으로 체크해서 자료를 뽑아 주고, 제가 잘 던졌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비교해서 또 자료를 전달해줍니다. 야구의 기본기를 다지면서 전력 분석의 신세계를 경험하는 부분이 아주 새로웠어요.”
한선태는 이천에서 가장 많이 훈련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쉬는 날은 물론 경기 이후에도 숙소에서 혼자 훈련장을 찾아 새도우 피칭으로 투구 감을 찾으려 애를 쓴다. 오죽했으면 그를 보는 코치들마다 “그만 하고 올라가서 쉬라”고 잔소리를 했을까.
“잠시 1군에 다녀왔다고 해서 빨리 1군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부상 없이 착실히 경험을 쌓으면 기회는 주어질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제 공을 던지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23일 저녁, 부모님과 식사하는 도중 1군 콜업 관련해서 전화를 받았다는 한선태. 아들의 야구 인생을 묵묵히 지원하고 응원했던 부모님은 아들이 정식으로 선수 등록을 하게 됐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건 절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어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콜업 소식 듣고 2시간 반 가량 통화했어요. 감사해야 할 분들에게 모두 전화드렸습니다. 전화 통화하면서도 또 감동했던 건 2군 선배들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제가 아니라 그분들이 1군으로 올라가셔야 하는데 제게 진심으로 이런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다시 이천으로 오지 말고 계속 1군에 남아 있어야 한다’라고요. 2군에서 던지는 것처럼 자신 있게 던지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요. 감동 아닌가요? 전 정말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한선태는 이전 LG 지명을 받은 직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군 마운드에 서 보는 게 꿈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곧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예상보다 기회가 빨리 와서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입니다. 아직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라 1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2군에서 절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잘해야만 합니다. 완벽한 사람도, 선수도 없겠지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LG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유명하지도 않은 선수에게 과분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고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게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한편 LG 최일언 투수코치는 한선태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구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선수치고 직구가 아주 좋다. 그 직구를 잘 살리려면 변화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군 선수들을 상대할 만한 변화구를 제대로 던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선태에게 절대 조급해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자고 말했다. 워낙 성실한 선수라 지금의 노력을 더한다면 자신의 결정구는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라고 본다. 그 결정구만 있으면 잠실 마운드에 설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한선태가 가는 길은 모두
‘
처음
’
이다. 그 처음을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사진=LG)>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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